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「괭이부리 이야기」 "공동수도앞에 물지게 지고 한 십리는 줄을 섰었지" 
 최고관리자 | 15-07-08 22:42
 

요즘 사람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에는 루핑이라고 타마구 입힌 종이 같은 걸로 지붕을 올려서 살았는데 그 높이가 내 목 정도나 되었을 게야.
이 동네야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지. 피난 온 사람, 남쪽서 올라온 사람, 그리고 요즘엔 여기 한국유리 다니는 외국사람들도 살잖아.
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에는 집집마다 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이 앞에 신인천관광쪽으로 공동수도 하나만 있었어. 그러니 사람들이 날마다 초롱이니, 물지게를 지고 그 앞에 줄을 서는 거야. 그 줄이 어찌나 길던지 한 십리는 되어 보였어.

이 동네야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지.

그렇게 물을 받아서 집으로 가져오면 그걸 쓰는 일도 쉽지 않았지. 지금에야 하루에 손을 열두 번도 더 씻지만 그 때는 물 한바가지를 떠놓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손을 씻고 그랬어.
빨래를 할 때도 큰 잠바 하나를 빨려면 물이 한 도람(드럼)은 필요한데 지금처럼 좋은 세제가 어디 있기나 한가? 그냥 커다란 고무다라에 빨래판 놓고 계속 비비는 거야. 헹구는 것도 그저 몇 번만 하고. 물을 버리는 것도 하수도가 없으니 아무 데나 버릴 수가 없잖아. 그러니까 구정물을 다라에다가 따로 모아서 요 앞에 흐르는 개천에다 흘려 버렸다고.(예전에는 할머니의 집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으로 개천이 흘렀다고 한다.)
그 개천에 물이니 뭐니 온갖 쓰레기를 다 가져다버리는 통에 냄새가 어찌나 많이 났었는지 말도 말아.
그러다가 한국판유리가 들어서면서 물 사정이 좀 나아졌지. 이 골목 안에 사는 사람들도 수도를 하나씩 둘씩 들여오기 시작했어.
그래도 수도를 놓지 못하는 사람들은 몇 집이 모여서 호스로 물을 끌어다가 쓰고 수도세를 나누어서 내기도 했는데 겨울이면 호스가 얼까봐 물을 쓰고 난 다음에는 꼭 접어서 들여놓고 했지.
저쪽(만석부두쪽) 바닷가로 가면 한국판유리에서 버리는 물이 나오는 곳이 있는데 겨울이면 사람들이 거기 가서 빨래를 많이 했어. 지금 생각해보면 그 물이 유리공장에서 버리는 폐기물이었던 것 같은데, 그 때는 추운 겨울에 펄펄 끓는 물이 나오니까 사람들이 갔던 것 같아. 나도 겨울에는 거기 가서 빨래를 몇 번했었지.

예전에는 아침마다 공동화장실에 길게 줄들을 서고 그랬지.

수도도 그렇지만 이 동네에 화장실은 저거(공동화장실) 하나였어. 요즘에야 저 공동화장실을 쓰는 집이 열 다섯 집이나 될라나. 다들 자기 집에다 정화조를 묻어서 쓰니까 공동화장실을 별로 안 가지만 예전에는 아침마다 화장실에 길게 줄들을 서고 그랬지.
처음에는 어찌나 얼기설기 지어놓았는지 가서 앉으면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그랬어. 그러다가 한 서 너 번은 고쳤을 게야. 저렇게 수세식이 된 건 얼마 안되었지. 이제는 자식들이 다 밖에 나가서 지내고 나 혼자만 여기서 지내니까 괜찮지만 명절 같은 때 손주들이 오면 좀 곤란하지. 이 녀석들이 화장실에만 데려다 주면 기겁을 하고 도로 나오고 그러네.
내가 집을 이렇게 고친지 꽤 오래 된 것 같은데 한 19년 정도 되었구만. 그 때는 사람들이 버글버글 했었는데. 단칸방에서 여덟 식구가 모여 사는 집도 있었고, 집 한 채에 네 세대가 같이 살기도 하고 그랬는데. 이제는 동네에 빈집들만 점점 늘어나고 참 쓸쓸해졌어. 젊은 사람들이 누가 들어와서 살려고 해야지.
그래도 우리한테는 여기가 고향 떠나 오래 살아 온 제 2의 고향인데. 한국유리 이사가고 나면 그나마 동네에 살던 외국사람들(외국인노동자)도 떠날 테고 집집마다 늙은이들만 집을 지키고 있게 생겼네.
<이광혁>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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